[조율.1] 8일자 조선일보 사설에 대한 간단한 스케치 조선일보의 잠자리가 뒤숭숭한 모양이다. 8일자 조선일보 사설 제목이 <국민은 편히 잠잘 수 없다>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웬 잠자리타령인가? "이런 군(軍)을 믿고 국민이 밤잠을 편히 잘 수 있겠는가? 대체 우리 군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치화(政治化)되었는가?" '정치화'된 군 때문에 불안하단다. 그래서 밤잠을 편히 자기도 겁이 난단다. 사정이 그렇다면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군의 '정치화'가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정치화된 군 때문에 잠을 못이뤘다는 조선일보의 진술이 진실이라면, 조선일보는 박정희 이래 지금까지 쭈욱 불면의 밤을 밝혀왔음에 틀림 없다. 애재라. 이를 어이 해야 하나? "6·29 서해도발과 관련한 대북 통신감청부대장의 연이은 폭로를 접하면서 우리는 참담한 절망감과 배신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조선일보가 밤잠을 설친 까닭이 보다 분명하게 제시된다. 참담한 절망감과 배신감. 옳거니. 잠은 마음이 편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신의 은총이어늘, 참담한 절망감과 배신감, 나아가 서해도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일보가 어찌 밤잠을 편히 잘 수 있을 것인가. 통신감청부대장의 연이은 폭로만 없었어도 증상이 이처럼 심화되지는 않았을 것을.... "그의 잇따른 폭로에 거론된 당사자들은 지금 일제히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서해도발 전후에 벌어진 정황들은 폭로내용 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중략).... 일부 매체들은 “꽃게잡이 어부들이 월선(越線)을 해서 충돌을 유발했다”는 남쪽 책임론까지 유포하고 나섰던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국정감사장에서 비밀문건을 흔들며 당시 자신들이 올린 북한 도발징후 사전보고를 군 수뇌부가 묵살했다고 주장"한 통신감청부대장의 폭로로 인해 조선일보의 나이트메어가 재발된 탓일까. 한번 고삐 풀린 조선일보의 연상은 끝을 모르고 내달린다. 초기대응의 문제점에서부터 희생자 영결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까지, 하다못해 꽃게잡이 어선들의 월선을 지적한 일부 언론의 보도까지.... "따지고 보면 서해도발은 ‘햇볕정책’이 계속되고 ‘주적(主敵)’이 모호해졌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간첩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북한의 대남정책 총수를 ‘수행’하고 다니는 세상에 무슨 일인들 못 일어나겠는가...." 끝없이 전개되던 조선일보의 연상이 문득 멈춰선다. 햇볕정책....! 그렇다. 이게 바로 문제의 근원이었다. 혐오의 대상이었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것만 해도 골치아펐는데, 대북 햇볕정책이다 뭐다 해서 빨갱이들에게 줄곧 퍼주기만 하고 있으니 반공.멸공.승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 안보의 첨병' 조선일보로선 차마 견딜 수 없는 고문과도 같았을 것이다. "서해도발도 결국은 햇볕 때문이었어...." [조율.2] 햇볕과 북한의 무력사용 "따지고 보면 서해도발은 ‘햇볕정책’이 계속되고 ‘주적(主敵)’이 모호해졌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조선일보 사설의 한 대목으로부터 논의를 진전시켜 보기로 하자. 이를 다른 말로 풀어 말하면 '햇볕정책과 북한의 무력사용의 상관성에 대한 고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햇볕정책은 서해도발의 예고편이었던가? (1) 햇볕과 북한의 무장침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98년 7월, 북한의 무장간첩 침투사건이 발생했을 때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은 이에 대해 "북한이 우리의 '햇볕정책'이 두려워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체제와해 위협을 느낀 북한 핵심세력 들이 우리의 대북자세를 '대결정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계속한다는 것. 몇몇 대북 전문가들도 "남북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군부내 강경세력들이 장애를 조성하려는 의도에서 이같은 침투활동을 감행했을 수도 있다"며 이같은 해석에 동조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7월 14일 <「햇볕」에 묶이지 말아야>라는 사설을 통해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 무장간첩이나 잠수정 침투가 현정부의 햇볕정책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났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은 그 동안에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96년에는 잠수정보다 몇배나 규모가 큰 무장 잠수함 침투사건이 있었으며 부여 간첩사건 등 그 전에도 수많은 무장 간첩사건이 있었다"고 이를 강력히 반박했다. '햇볕정책은 북한이 싫어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이라는 현 정부의 주장은 아무런 설득력도 갖지 못한다는 것이 조선일보의 요지. (2) 햇볕과 북한의 무장침투와는 상관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일보의 주장은 1년 뒤 극적으로 뒤집어진다. 99년 6월 북한 함정이 서해해상을 침범, 무력사용을 가한 사건이 벌어지자 조선일보는 16일 <정부는 북한 똑바로 알아야>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은 "우리가 일방적인 '햇볕'을 꾸준히 펴 나가기만 하면 북한도 결국은 개혁 개방쪽으로 나와줄 것"이라는 현 정부의 가설이 "대단히 취약한 희망사항 임을 일단 드러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북한의 소행은 한마디로 김정일 정권이 남쪽 현정부의 '햇볕' 구도 안으로 절대로 들어와주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천명해 보인 것이다. 김정일로서는 현 정부의 햇볕논리에 순순히 호응했다가는 50년 지탱해온 폐쇄적 독재체제의 이완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니 그런 위험천만한 '햇볕'에 그가 왜, 무슨 이유로 호응해주겠는가?..." "(서해도발은) 김정일 정권이 남쪽 현정부의 '햇볕' 구도 안으로 절대로 들어와주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천명해 보인 것"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이 말과 상기한 "북한이 우리의 '햇볕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무력도발을 하는 것 같다"는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의 분석과 무엇이 다른가. 더욱 "현 정부의 햇볕논리에 순순히 호응했다가는 50년 지탱해온 폐쇄적 독재체제의 이완을 자초하게 된다"거나 "위험천만한 '햇볕'" 운운한 대목에 이르러선 현기증마저 느끼게 한다. 도대체 '햇볕은 북한이 싫어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이라는 현 정부의 설명이 맞다는 건가? 틀리다는 건가? 조선일보의 다음과 같은 말도 들어 보자. "북한이 이런 식으로 임하는 이유는 꼭 한가지다. '햇볕'이 기대하는 긴장완화와 평화적 공존, 교류, 그리고 체제개방과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북한식 '혁명독재'와 북한식 '폐쇄체제'라는 '독'에 대해 '해독제' 구실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에 필요한 것은 그 존립을 위해서도 남쪽과의 투철한 '혁명적-이념적 적대관계'이지 그 수정이나 이완이 아니다...." 조선일보의 설명대로라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은 김정일 정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정책, 아니 김정일 정권의 존립을 그 밑바탕에서부터 뒤흔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란 말이 된다. 심지어 햇볕정책이 북한의 '혁명독재'와 '폐쇄체제'라는 '독'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 구실을 한다고까지 말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런즉 "따지고 보면 서해도발은 ‘햇볕정책’이 계속되고 ‘주적(主敵)’이 모호해졌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조선일보의 사설이 논리적으로 정당한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한 조선일보의 두 사설에 직접 대비해 보자. 아둔한 나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조선일보의 현란한 립서비스를 따라잡기도 숨차니 그만 포기하련다. [덧글] 글을 맺기 전에 조선일보에게 한 가지만 물어 보자. "'햇볕은 북한이 싫어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이라는 현 정부의 설명이 맞는가? 아니면 틀린가? 만약 맞다면, 왜 그렇게 햇볕을 못잡아 먹어 안달인가? 햇볕이 북한 김정일 정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해독제같은 정책이라면 조선일보로선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틀리다면, 왜 1999년 6월 사설에서는 정반대되는 말을 했는가? 조선일보는 사설에서까지 복화술을 구사하는가? 조선일보를 추적하는 글을 쓰다 보면 나 스스로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회의가 들 때가 많이 있다. 사설의 논조마저 갈대처럼 이랬다 저랬다 멋대로 휘어지는 이런 신문같지도 않은 신문을 분석한다는 게 슬프고 분해서다. 제 스스로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 '오락가락일보'(誤諾假諾日報)를 분석해야 하는 어리석음이여! 이런 신문지가 대한민국 일등신문으로 행세하는 서글픈 현실이여! 하니리포터 문성(한별) 기자/ aemet@hanmail.net 편집시각 2002.10.09(수) 18:26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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