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위약금 부과하나 마나

“신문협회 제재 실효없다”…
신문고시 합헌 뒤에도 자전거 판쳐  

발행일 : 2003.03.01 [352호 1면]



신문협회가 자율규약 준수를 외치며 수억원대에 달하는 위반 위약금을 해당 신문지국에 물리고 있지만 일선 판매시장의 무차별적 경품공세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 관련기사 4면

신문고시 합헌 판결이 내려진 직후인 지난 20일 오후 1시. 경기도 일산에서는 수십대의 자전거 경품을 깐 ‘좌판’이 호수마을 청구아파트를 비롯해 강촌마을 라이프아파트 등 다섯 군데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자전거 좌판을 펼친 곳은 동아일보 남일산지국.

이들 지역에서는 좌판 철수를 요구하는 다른 신문사 지국장들과 동아일보 지국 직원들 사이에 시비가 일었고, 한편에서는 일반시민들이 “뭐가 불법이냐, 소비자가 자전거 받고 신문 보겠다는데 왜 막냐”며 따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동아일보 남일산지국의 자전거 불법판촉전은 22일까지 계속됐다. 이같은 경품제공은 자율규약 규제기구인 신문협회 신문공정경쟁위원회에도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4명의 인원이 상근하는 신문공정경쟁위원회의 현장 실사를 통한 신속한 단속은 불가능하다. 신문협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기능은 위약금 부과다. 경찰이나 사법기관도 아닌데 경품을 징발하거나 강제철수 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럼 위약금 부과는 현실적인 제재조치가 될 수 있을까. 일선 지국장들은 단연코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서울지역의 한 동아일보 지국장은 “경품 한 건당 100만원, 좌판 한 건당 500만원의 위약금을 물린다. 1000만원 이상의 위약금이 떨어질 때 그거 내면 지국은 문닫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자전거 경품 건으로 실사를 받은 또 다른 서울지역의 동아일보 지국장은 “우선 본사가 낸 이행적립금으로 대체하는 걸로 안다”며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조선일보 판매국의 한 간부도 “신문협회의 자율규제는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위약금을 부과해도 안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7억3200만원의 위약금을 부과받은 동아일보 지국들은 납부기한을 넘긴 상태. 지국들이 기한까지 위약금을 내지 않으면 본사가 예탁한 이행적립금에서 대체하게 된다. 최용원 동아일보 고객지원국장직대는 이에 대해 “신문협회나 판매협의회 등에서 공식으로 통보받은 바 없다. 더 이상 얘기할 부분이 없다”고 답변했다.

신문사별로 1200만원부터 2억1000만원까지 책정된 이행적립금은 규모가 큰 조중동의 경우 위약금 대체를 빼고도 항상 사별로 2억1000만원을 유지해야 한다. 신문협회측은 “동아일보가 위약금 제재와 관련해 입장을 전달해왔으나 오는 31일 열리는 신문공정경쟁위 회의에 보고하기 전에는 일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동아일보는 현재 일개 부서장 수준에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행적립금 보충을 하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할 후속조치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신문공정경쟁위의 한 관계자는 “자율규약 자체로 더 이상 제재가 안될 경우 공정위원회로 이첩하자는 의견이 이미 나왔다”고 말했다.

또 소걸음 수준인 신문협회 집행능력으로는 바람 같은 속도로 혼탁해지고 있는 신문시장의 파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12일 열릴 예정이던 신문협회 이사회가 연기돼 다소 진척을 보였던 신문협회-공정위 양해각서 체결도 늦춰졌으며, 지난달 30일 이종대 신문공정경쟁위원장 사임으로 인한 결원도 위촉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장 역시 공석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공정위원회라도 신문고시에 의거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공정위원회 담당자는 “추진중인 양해각서가 조속히 마무리되길 바라고 있다. 각서 체결로 공정위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면 상습적으로 반복 위반하는 신문사에 직접 조치할 수 있다”고 말했으나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 공정위가 전면에 나서기 쉽지 않은 분위기다. 도저히 자율규약에 맡겨놓을 수 없다고 판단돼야 나서지 않겠는가”라고 전해 공정위의 ‘눈치보기’가 여전함을 내비쳤다.

산본지역의 한 중앙일보 지국장은 “판매시장 정상화를 위해, 지국 생존을 위해 신문고시 준수는 중요하다. 하지만 백주 대낮에 전국 단위의 불법 자행이 가능한 분야는 우리 사회에 언론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신문고시를 제정한 공정위는 이제 더 이상의 직무유기를 벗어나야 할 때다.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
  내용 입력창 크게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