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납’‘도청자료’ 등 정치인 터뜨리기→언론 받아쓰기 악순환 발행일 : 2002.09.26 [361호 1면]   정치권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막말 공세 등 진흙탕 싸움에 대해 언론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이를 비난할 자격이 없으며 오히려 언론이 정치권을 진흙탕으로 만든 주범중의 하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3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국회 법사위의 서울지검 국감에서 “민주당 의원 3명이 여자 탤런트들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고 말했다. 홍의원의 이 발언은 다음날 언론에 <“현역의원 3명 性상납 받아” 홍준표 의원 국감서 주장 파문>(국민일보), <“의원 3명 연예인 성상납 받아”>(중앙일보), <“의원 3명 연예인 성상납 받아”>(조선일보), <연예인 성상납 새 파문>(문화일보) 등으로 자세히 보도됐다. 이어 24일 같은 당 정형근 의원이 정보기관 도청자료에서 나온 내용이라며 밝힌 “대한생명 매각에 박지원 실장, 노무현 후보, 한화갑 대표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다음날 <“한화 대한생명인수 실세개입 의혹”>(동아일보), <“한화, 대생 인수 로비 의혹” 제기>(중앙일보), <“한화, 大生인수 특혜”>(세계일보) 등으로 비중있게 실렸다. 이 보도 이후엔 정치권의 계속적인 공방만 보도됐을 뿐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있을 법한 사실관계에 대한 자체 후속보도는 어느 신문에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한 일간지 기자는 “사안 자체는 특별검사가 수사에 나서도 모자랄 사안들인데 단 한 줄의 자체 후속보도조차 없다는 것은 언론도 보도를 하면서 이미 의원들의 일회성 이벤트 발언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언론이 정치권의 ‘아니면 말고’식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국감 시기에는 의원들의 저질 막말과 명예훼손성 주장들이 신문의 주요 지면을 차지한다. 이같이 튀는 발언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언론에 보도되고 의원들은 다시 근거가 있든 없든 폭로거리를 찾아 한방 터뜨리는 악순환 구조가 언제부턴가 언론계와 정치권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또 한 켠에서 언론은 정치권의 막말 싸움을 개탄한다. 조선일보 25일자 동서남북 칼럼은 “일찍이 이런 대선은 없었다”면서 “정당들간에 ‘누가 되면 나는 이민간다’ ‘누구는 성상납 받았다더라’ 등의 저질 소아병적 싸움들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저질 소아병적 싸움’을 그대로 조목조목 전한 것은 다름 아닌 언론이다. 정당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는 “한쪽에선 국회의 진흙탕 싸움을 세세히 전해 이를 부추기면서 또 한쪽에서는 진흙탕 싸움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때 개인적으론 언론이 파렴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의원이나 정의원의 발언은 폭로성 기사로 키울 게 아니라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으로 국감장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접근했어야 마땅하다”면서 “그렇지 않고 일단 발언을 소개했다면 보도한 언론은 어느 정도 신빙성을 인정한 셈이 되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추가취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언론의 이같은 보도행태가 지난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틀이 굳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무조사 이후 일부 언론이 국회에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흠집내기 발언이 나오면 이를 그대로 기사화하기 시작하면서 ‘받아쓰기’ 보도가 고착됐다는 주장이다. 한 일간지 기자는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사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에 언론사의 이해관계가 섞여서는 곤란하다”면서 “출처도 근거도 불명확한 주장들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권력에 대한 사감 때문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의 순수성마저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호석 기자  arisan@mediaon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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