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기자 hongkoo@mail.skhu.ac.kr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총리에게 이북이 일본에게 행한 납치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많은 이북전문가들이나 일본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적극적으로 과거 북한정권이 행한 불미스러운 범죄행동을 인정하고 나선 데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이북과 일본의 관계가 예상을 뛰어넘어 급진전되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몹시 불안하고 못마땅한 눈길을 보낸다. 그런데 김정일이 납치 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에 대해 피해국인 일본의 분위기는 우리 사회와는 달랐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여론은 조일수교 교섭의 진전에 대한 환영보다도 납치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는 점에서 교섭의 진전에 대해 차갑게 돌아섰다. 고이즈미가 김정일의 사과를 받아 낸 것 자체는 예상 밖의 성과이기는 했지만, 이 성과가 온전히 성과로 기록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남북관계 또는 조미관계가 개선될 때마다 어깃장을 놓던 수구언론들은 좋은 기회를 만난 듯 목소리를 높인다. 조선일보의 9월 18일자 사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일본총리에게 ‘대남(對南) 공작을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했다’고 사과하면서도 정작 남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미안한 기색마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참담한 자괴심을 안겨준다. 그의 이런 태도는 남한을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우습게 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그 동안 무엇을 했나?’하는 자성도 떨칠 수 없다.” 이 사설은 “김정일이 털어놓은 사실은 명백한 ‘국가범죄’이며, 북한정권의 진면목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북한의 납치공작에 희생당한 건수(件數)만 따지더라도 우리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정부는 왜 가만히 있느냐고 목청을 돋우었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 이어 9월 23일에는 전 연세대 교수 송복 씨의 '국가범죄'란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에서 송복 씨는 이북이 범한 국가범죄에 대해 “우리와 일본의 의지와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정부를 질타했다. 그는 또 이북에 대해서도 “일본엔 몇 사람을 납치하고도 사죄하고, 우리는 수천명을 납치하고도 미안한 기색도 보이지 않는 그 이중성의 잣대”에 대하여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둘러 싼 논란을 보면서 필자는 착잡한 느낌을 던질 수 없었다. 이북이 대남공작을 위해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변명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도 몹시 마음상하는 일이지만,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행한 숱한 학살만행과 20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일본군 성노예 납치, 수백만 명의 강제연행 등 국가범죄가 과거의 일이라는 이유로 묻혀지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조선일보나 송복 씨가 이중잣대 문제를 제기한 것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이중잣대를 발견할 수 있다. 필자도 이북이 일본인을 납치한 행위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국가범죄라는 것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과연 대한민국은 국가범죄에서 자유로운가? 조선일보나 송복 씨는 일본이나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국가범죄의 책임을 붇지 않고 있다. 이북에 납북된 분들이 돌아와야 된다는 점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분단상황에서 남과 북이 서로에게 행한 못된 짓들은 우리가 화해와 공존, 통일로 가기 위해서 풀어야 할 무거운 과제이다. 분단이란 휴전선의 남과 북 어느 한 쪽만이 절대적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 정권으로 존재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이 이북에 대해 국가범죄라고 부르는 행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사죄를 요구할 만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 우리는 되짚어 보아야 한다. 분단의 비극 아래에서 우리도 수천 명의 북파공작원을 이북에 보냈다. 대한민국 정부와 수구언론은 수천 명의 북파공작원들이 이 땅에서 그들의 갈갈이 찢겨진 삶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 데 대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일을 하라고 살인병기로 특수교육을 받아야 했던가?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이 자신의 국민들에게 저지른 국가범죄이다. 어디 납치뿐인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민간인 학살은 100만에 가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민간인 학살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산군의 만행을 떠올리지만,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 치하에서, 특히 공산군의 퇴각 시기에 13만 명이 학살당했다면, 남측과 유엔군이 이북을 점령한 두 달 간 17만 명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남과 북이 서로 상대지역에서 행한 학살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쪽 정권과 그 비호를 받는 우익단체, 그리고 미군이 남측 지역 내에서 행한 학살이다. 제주 4ㆍ3사건이나 보도연맹원 처형, 수감 중이던 좌익사건 관련자 집단처형, 지리산 일대의 공비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거창학살 등은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범죄였다. 이 엄청난 문제를 외면한 채 우리는 반세기를 보내왔다. 그리고 물리력을 독점한 국가기구나 그 구성원들이 힘없는 시민들을 상대로 한 국가범죄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군사독재정권 기간 중의 숱한 의문사 사건들, 수지 김 사건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그나마 진상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행복한 경우이다. 의문자진상규명위원회에 접수조차 하지 못한 군의문사 사건이 수백 건이다. ‘다행히’ 목숨을 잃진 않았어도 군사독재정권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짓밟힌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송복 씨는 이북이 행한 납치사건에 대해 “그 국가범죄를 말하기만 해도 냉전적 사고니 반통일 세력이니 반민족적 행태라고 매도하기만 하지 않았던가?”라고 반문했다. 과연 그런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이중 잣대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5ㆍ16군사반란 이후 반란의 주역들은 민간인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한 유가족들을 잡아다가 혁명재판에 부쳐 사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성고문 피해를 호소한 여대생은 성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는 파렴치범으로 정부에 의해, 언론에 의해 철저히 인격을 유린당했다. 살해당한 수지 김은 간첩으로, 그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고통을 당한 반면, 살인범 윤태식은 안기부의 비호 하에 벤처 사업가로 승승장구한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송복 씨의 푸념을 보면 몇 해 전 정형근에게 고문을 당한 서경원 전 의원이 정형근을 찾으러 다니자 조선일보가 정형근의 동료들의 입을 빌어 간첩 잡던 사람이 백주 대낮에 간첩들에 쫓겨다니는 상황이 되었다고 호들갑을 떨던 코미디를 연상케 된다. 민간인 학살이나 고문 등은 대한민국의 법체계 하에서 불법임에도 자행된 것이었다면, 때로는 엄청난 국가범죄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최근 진상이 밝혀진 인혁당 사건이나, 진보당 사건, 민족일보 사건 등은 법의 이름으로 정적을 살해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국제법률가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규정한 인혁당 관련자들의 사형집행이 일어난 1975년 4월은 한국언론이 유신권력에 완전히 굴복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아일보」의 백지광고 탄압에 이은 대량해직, 조선일보의 대량 해직 사태가 바로 이 때 일어난 것이다. 이로부터 한국의 보수언론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섰다. 동아일보는 비록 사외 기고의 형태로나마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배제를 주장했으며, 인혁당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를 ‘사법살인의 협력자’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허일병 사건의 진상규명 노력에 집요하게 발목을 잡으면서 이북의 국가범죄에 대해서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김정일이 자기네 국가기구가 행한 범죄행위를 인정한 것은 그런 행동을 깔아뭉개고 시치미를 떼거나 적반하장 격으로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김정일 정권을 미화하는 일일까? ▲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002 희망네트워크 김정일의 사과가 의미를 가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 사실인정과 사과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이중 잣대를 비판한 것 자체는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외면할 때 그 행동은 위선과 거짓이 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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