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4일자 '정치프리즘' 코너를 읽고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소신과 고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소신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옳다고 믿고 그에 따라 하려고 하는 생각'이고, 고집은 '한번 정한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고 굳게 내세워 우기는 것 또는 우기는 성미'라고 되어 있다. 양자 공히 자신의 생각을 굳게 밀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점이 있는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소신이란 단어에 '옳다고 믿는 바'라는 말이 첨가된 정도랄까. 이렇듯 미미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둘의 쓰임새는 크게 다르다. 소신이 주는 어감은 매우 긍정적이다. 반대로 고집은 매우 부정적이다.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멋있어 보이고 불의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의 소유자라는 느낌이 드는 데 반해, '고집 센 사람'이라면 어쩐지 멋대가리 없고 제 욕심대로만 만사를 처리하려는 독불장군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중앙일보 24일자 '정치프리즘' 코너에 <노무현의 '발가락 양말'>이란 흥미로운 제목을 단 글이 올랐다. 글을 쓴 이는 김현일 논설위원. 김 위원이 하고많은 제목 가운데 하필이면 냄새나는 '발가락양말'을 글제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주위에서 뭐라 하든 말든 꿋꿋하게 발가락양말만을 고집하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모습을 통해 아무도 못 말리는 그의 "고래심줄 고집"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 "盧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된 후에도 이 양말을 고집한다. 주위에서 모양 사납다고 보통 양말로 바꾸기를 권했지만 막무가내다. 보다 못한 盧후보 정치특보인 천정배 의원이 자기 부인을 盧후보 부인에게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조치를 당부했으나 여전하다. 바꿀 이유가 없다며 발가락 양말을 고수하는 것이다. 盧후보의 고래심줄 고집은..." 별 걸 다 갖고 시비를 건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지만 그러나 대범하게 넘기기로 하자. "바람이 잘 통해 무좀 방지도 되는 등 여간 편한 게" 아닌 '발가락양말'을 노 후보가 그처럼 고수하는 내밀한 개인적인 사정은 캐묻지 않고, 그저 남들이 신지 말란 대도 오불관언(吾不關焉) 제 주장만 내세운다며 노 후보의 옹고집을 은근히 탓하는 몰상식도 웃어 넘기기로 하자. 양말 따위 갖고 싸우기는 싫으니까. 남이 미처 못 보고 지나간 것에서 오묘한 천리를 꿰뚫는 김 의원은 이어지는 글에서, 마치 마술램프에서 거인 '지니'를 불러내는 신밧드처럼, 노 후보의 '발가락양말'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그의 정치적 협량(狹量)함을 끄집어내는 놀라운 신통력을 발휘한다.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노 후보를 괴롭히는 민주당의 당내 분란도 그의 발가락양말 하나로 간단히 수렴된다. 김 위원에 따르면, 노 후보가 이인제 후보 집을 찾아가 협력을 간청하지 않은 것도 그의 고집 탓이다. 노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따라갈 사람은 가라"고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도 그의 고집 탓이다. 심지어 "8월 재.보선 때 명분을 강조하며" 득표력이 떨어지는 운동권 출신을 공천한 것이나, "이기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에 "그래선 대통령이 돼봤자 소용없다"고 응하지 않은 것들도 모두 그의 대책 없는 고집 탓이다. "千 특보가 '이기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권했음에도 '그래선 대통령이 돼봤자 소용없다'고 버티는 盧후보다. 盧후보가 자신의 노선을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후보자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라도 盧후보를 지켜야 한다고 韓 전 대표는 말한다. 다만 "지지율이 확연히 떨어지면 달라질 소지가 없지 않다"고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문득 궁금증이 도진다. 김현일 논설위원은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걸까? 그래야 정치적으로 통 큰 사람이 된다고 여기는 걸까? 아니, 그보다 "그래선 대통령이 돼봤자 소용없다"고 그를 뿌리치는 노 후보의 태도는 소신에 해당할까 아니면 고집에 해당할까? 또한 목전의 득표력에 연연하지 않고 명분을 고수하는 노 후보의 태도는 소신과 고집, 어디에 해당할까? 내친 김에 더 묻기로 하자. 국민경선을 통해 획득한 대통령후보자리를 단지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이들과 그것은 정당한 절차를 통해 부여된 합법적 권한이므로 절대 내놓을 수 없다는 노 후보 가운데 어느 쪽이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충실하려는 노 후보와 현재 지지율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몽준 의원에게 붙으려는 '반노파'들 가운데 어느 쪽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할수록 이상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발가락양말'을 통해서도 노 후보의 정치적 편협함과 민주당의 복잡다기한 사정까지 단번에 꿰뚫어내는 김 위원의 형안이, 못 배운 사람들의 눈에도 잘 보이는 '반노파'들의 공공연한 반칙행위는 어찌하여 못 짚어내는 것일까? 하긴 '발가락양말'에서 노 후보의 고집만 보고, 그를 벗어라 마라 압박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은 보지 못하는 그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밝혀 말하자.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민주당 내 분란에서 가장 먼저 지적 받아야 할 대상은 노 후보가 아니다. '반노파'들의 탈당 움직임에 대해서도 노 후보가 책임질 일은 전혀 없다. 잘못된 쪽은 바로 저들, 곧 원칙과 소신도 없이 오로지 시류에 편승하여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우왕좌왕하며, 국민적 정당성을 획득한 당의 공식후보를 중심으로 합심 협력하기는커녕 사사건건 뒷전에서 발목 걸고 훼방하는 정치꾼들이다. 변절과 반칙이 난무하는 패거리정치를 지양하고 소신과 원칙이 살아 숨쉬는 선진정치를 향도해야 할 기자라면, 모름지기 시시비비를 엄정히 가려 국민에게 바른 판단거리를 제공하고 눈을 뜨게 해 줘야 한다. 그것이 정치 전문기자의 할 일이다. 그 점에서 소신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마저 죄다 고집으로 단정하고, 민주당의 분란을 노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뒤집어씌워 그의 협랑함을 탓하는 김 위원의 글은 분명 함량미달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덧글.1] 중앙일보 편집국은 며칠 전에 자식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정연씨가 말못할 질병을 앓고 있다"는 등의 헛소문을 유포해 민심을 호도하려 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짚어낸 이연홍 기자의 글(병풍 對 풍문)을 함량미달의 사유로 최종판에서 삭제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의 잘못을 지적한 그 글은 함량미달이고, 민주당 내 분란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노무현 후보의 '발가락양말'을 부각시킨 이 글은 함량초과인가? 중앙일보의 자세한 해명을 듣고 싶다. [덧글.2] 중아일보 홍석현 회장은 지난 19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창간 37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자전거를 주고 판매에서 1등하는 신문이라면 1등신문이 아니고, 내용 없는 증면으로 1등하는 신문 역시 1등신문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일갈하면서 "폭넓고 깊이있는 신문, 프로들이 만드는 신문, 오피니언 리더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회자되는 신문, 전문성이 확보되고 사실에 기초한 튼튼한 취재력에 바탕을 둔 신문, 이런 (일류)신문을 만들어 보자"고 호소한 바 있다. <노무현 후보의 '발가락양발'>이란 기사가 그 모범답안인가? [정치 프리즘] 노무현의 '발가락 양말'(2002.9.24) 노무현(盧武鉉)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발가락 양말'을 착용한다. 발가락이 하나씩 들어가게 돼 있는 이 양말은 바람이 잘 통해 무좀 방지도 되는 등 여간 편한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눈에 익숙하지는 않아서 "징그럽다"며 질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정장 차림에 이런 양말을 착용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盧후보는 대통령 후보가 된 후에도 이 양말을 고집한다. 주위에서 모양 사납다고 보통 양말로 바꾸기를 권했지만 막무가내다. 보다 못한 盧후보 정치특보인 천정배 의원이 자기 부인을 盧후보 부인에게 보내 사정을 설명하고 조치를 당부했으나 여전하다. 바꿀 이유가 없다며 발가락 양말을 고수하는 것이다. 盧후보의 고래심줄 고집은 이인제 의원 등과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측근들이 상대의 집을 방문해 협력을 요청해보라고 진언했지만 허사였다. 당 화합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남길 수 있으니 시도하라는 권유를, 마음에 없는 일을 왜 하느냐며 뿌리쳤다. 얼마 전부터 출입기자들을 집으로 초청하고,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긴 했으나 마지못해 할 뿐, 고집의 기본이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 "모양 사납다" 말려도 안 벗어 이런 盧후보가 '마이 웨이'를 외치고 나섰다. 정몽준 후보를 따라갈 사람은 가라는 것이다. 추석 연휴를 끝낸 이번 주가 대세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터인데, 지난주 선대위 출범식 참석의원은 소속의원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반(反)이회창 연합전선의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종국에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단언한다. 당내 중도그룹의 한광옥 전 대표는 당선 가능성 못지 않게 盧후보의 좌파 성향과 스타일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鄭후보의 거품이 빠질 경우에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반노(反盧)의원들이 주저앉기를 꺼릴 것이라는 얘기다. *** 지지율 더 빠지면 '마이 웨이' 꺾을까 실제 "경선 당시 원체 경황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뭔가에 홀렸던 모양"이라며 盧후보를 멀리 하는 의원들도 상당수다. 김영배 전 대표 등은 8.8 재.보선에서 운동권 출신들의 득표율이 특히 저조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로 반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盧후보의 세 확보 관건은 지지율과 더불어 이념 문제인데 이게 간단치 않다. 盧후보가 그간 보여준 급진적 언행은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다. 그의 혜화동 자택 거실 한쪽 벽 책꽂이를 가득 메운 각종 운동권 서적들이 암시하듯 신념의 분출이다. 그는 8월 재.보선 때도 명분을 강조하며 득표력이 떨어지는 운동권 출신 공천을 밀어붙였다. 千특보가 "이기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고 권했음에도 "그래선 대통령이 돼봤자 소용없다"고 버티는 盧후보다. 盧후보가 자신의 노선을 양보할 것 같지는 않다. 후보자리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라도 盧후보를 지켜야 한다고 韓 전 대표는 말한다. 다만 "지지율이 확연히 떨어지면 달라질 소지가 없지 않다"고 여운을 남긴다. 盧후보의 훌훌 털어버리는 '낭만적' 성격이 작동할 가능성도 있지만 이 역시 "盧후보가 홀몸일 때와는 달리 추종자들이 많아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선이 석달도 안 남았지만 대진표를 짜려면 더 기다려야겠다. (김현일 논설위원)   2002/09/24 오전 07:12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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