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트렌드와 아젠다’라는 면이 있다. 얼마 전 김광일 논설위원이 거기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 썼다가 발각됨으로써 그 면의 권위가 한껏 빛난 바 있다. 작가 본인의 작품해설에 따르면 표절이 아니라 “혼성모방”이란다. 역시 문화부 출신은 다르다. 농담을 해도 기본이 포스트모던이다. 그 면에 역시 문화부 출신 이한우 논설위원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적인 글을 실었다. 축구에 관한 글이다. 이문열씨의 홍위병 발언과 이승복 보도에 관련한 두 건의 법원판결에 한껏 고조됐나 보다. 축구에서도 두 번의 옐로 카드는 퇴장을 의미하는 바, 축구가 아니니 퇴장 요구는 못하겠고, 다만 시민단체에서는 “자신의 패소를 성찰할 수 있는 양식”을 가지란다. 체육부 출신이 아니라 그런지 경기를 보는 관점이 영 미숙하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이문열씨의 “홍위병” 발언에 관한 판결은 시민단체에 대한 유죄판결이 아니라 이문열씨에 대한 무죄판결이다. 따라서 그것은 시민단체에 대한 옐로 카드가 아니다. 그저 더티 플레이를 하는 이문열 선수에게 옐로 카드를 주라는 시민단체들의 어필을 심판이 거절한 것뿐. 게다가 이게 이문열 선수에게도 딱히 좋을 건 없다. 왜 `홍위병’ 킥을 남발해도 되는 그를 마크하기 위해 시민단체 팀에서는 이제 `친위대’ 태클을 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게 피차 뭐 하는 짓인가 그래서 이 문제는 이문열 선수가 축구장에서 느닷없이 `검도 5단’의 플레이를 하지 않고 자중하는 선에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다. 이승복 어린이 문제도 이제 겨우 1심 판결이 나왔을 뿐, 최종 판정은 두 선심의 견해를 들어본 다음에 내려지는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한우 선수처럼 직접 심판의 주머니에서 옐로 카드를 꺼내들어 흔들면, 지켜보는 이 관중,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설사 그쪽 팀이 승소를 해 프리킥을 얻어도 그 대가로 페널티 킥을 허용해야 한다. 그건 알고나 있을까 조선일보 기자들도 아이들이 있을 터, 자기 아이들에게도 그런 상황에서 이승복을 본받으라 가르칠 건가 그럴 리 없을 게다. 그러므로 이 건 역시, 비참하게 죽은 한 어린이를 졸지에 반공의 순교자로 만들어 애들에게 따라 배우라 권했던 그 분들이 그 광기와 야만성을 `성찰’하는 선에서 해결하는 게 좋은 것이다. 방상훈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한마디. 조선일보 팀의 고질병은 공격수의 노후화로 체력이 달린다는 것. 이에 방 감독이 과감하게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두 젊은 선수를 투톱으로 기용했다. 과연, 교체되자마자 이들은 시민단체 팀의 골문을 위협한다. 한 선수는 프랑스 팀의 스타 베르베르 선수를 `혼성모방’한 현란한 발리슛을 선보였다. 위치 좋고, 자세 좋고, 앞으로 발에 공을 맞추는 연습만 하면 되겠다. 대(對) 최장집 사상검증 전의 활약으로 눈길을 끈 또 다른 선수는 한껏 물오른 기량으로 현란한 드리블을 하다가 기어이 상대의 골문를 가른다. 스피드 좋고, 슛 좋고, 반지에 키스를 하는 골 세리머니 좋고. 이 선수는 축구규칙 중에 `오프사이드’라는 게 있다는 것만 배우면 되겠다. 축구처럼 레드 카드가 있어 법원의 옐로 카드 두 장에 퇴장을 해야 한다면, 이미 숱한 송사에서 패소한 조선일보 팀은 케이-리그에서 퇴장을 해도 이미 오래 전에 해야 했을 터. 그건 기대도 안 하고, 다만 이 참에 아직 에이-매치 경험이 많이 부족한 이한우 선수가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을 기르는 틈틈이 그 동안 조선일보가 받은 “옐로카드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며 “자신들의 패소를 성찰할 수 있는 양식”을 갖추는 한편, 경기 중 `붉은 악마’의 색깔에 시비를 걸며 `하얀 천사’가 되라고 관중석에 감자바위를 날리는 매너만 고친다면,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하는 것도 결코 헛된 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게다. 꿈★은 이루어진다. 진중권/ <아웃사이더>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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