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 기자 crikikim@chollian.net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면 지나간 역사가 오늘의 문제의식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해석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석투쟁' 역시 숙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계급투쟁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사회세력 사이의 갈등의 대리전의 양상을 띤다. 근자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해석의 경향이 대두되고 있다. 아직 적당한 이름을 붙이기는 이르지만 크게 보아 역사에 대한 미시사적 접근경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국가, 민족, 정치, 경제사 등등의 거시프리즘이 아닌 일상, 생활, 의식, 사회심리 등 미시프리즘을 통해 역사를 다시 본다는 것이다. 이는 굳이 우리만의 경향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이러한 경향은 이러한 일반적인 역사 인식론적 차원을 넘어 구체적 역사에 적용되면서 보다 집중적으로 하나의 견고한 경향성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90년대 중반 이래의 '식민지근대화론'과 '박정희 재평가론'이 그렇고, 1980년대 이후의 사회이해와 관련된 '일상의 파시즘론'과 '우리 안의 폭력론'이 그 범주 안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친일파 청산 문제와 관련하여 이와 비슷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가히 하나의 유행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새로운 역사해석'들의 특징은 한마디로 1960년대 이래 우리 역사학, 또는 사회과학의 특징인 민족/민중적 역사해석의 전복을 수행하는 '탈민족/민중적 역사인식'이라는 데에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박정희 재평가론의 경우 일본제국주의와 박정희 독재정권의 '근대화'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지닌 반민족/반민중적 성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을 상쇄하는 기능을 수행하였고, 일상의 파시즘론, 우리 안의 폭력론, 그리고 최근의 친일파 재해석론 등은 제국주의 혹은 파시즘 정권에 대한 물리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민중의 자발적 비자발적 협력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이전까지의 '억압/피억압', '독재/저항'이라는 이항구조에 근간을 둔 역사인식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그 어떠한 견고한 인식도 회의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때, 이러한 전복적인 한국 근현대사 인식은 충분히 존재의의를 지니는 것이고 보다 활발한 논의와 실증적 구명을 통해 생산적 논의를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 전복적 문제인식을 제기한 주체들의 정치적 경향이나 계급적 정체성 등과 얼마나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제기들을 현실적으로 긴요하게 이용, 혹은 악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역사 해석이 현실적으로 그와 연관된 사회세력이나 집단에 의해 지지되고 이용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사회세력이나 집단이 과거 역사 속에서 저질렀던 명백한 범죄행위들을 합리화하거나 은폐, 호도하는 데에 악용된다면 그것은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근대화론'에서부터 '우리 안의 폭력론'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90년대형의 탈민족/민중적 역사인식론들은 거의 전부가 조선일보에 의해 주목되고 대서특필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특히 일제 말의 친일과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집권기에서의 권언유착을 일종의 원죄의 사슬로 끌고 다니고 있는 조선일보로서는 이러한 '전복적' 역사인식이야말로 구세주가 아닐 수 없고, 이런 인식을 제기한 인물들이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을 것이다. '일상의 파시즘론'의 임지현 교수, '우리 안의 폭력론'의 문부식씨, 그리고 친일파들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문제 삼은 안병직 교수 등이 조선일보와 이런저런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필지의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지현 교수가 한동안 조선일보에 여러 글들을 기고하고, 문부식씨가 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하고, 지난 8월에 인터뷰를 한 안병직 교수가 결국 이번에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외부기고란인 <아침논단>의 고정 필진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순수한' 문제제기가, 한 노회한 반민족/반민중언론의 구애 앞에서 어떻게 가장 '불순한' 방식으로 변질해가는가를 알 수 있다. 최근 조선일보의 <트렌드&아젠다>란에 데뷔한 서울대 서양사학과 박지향 교수의 첫 글이 바로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의 안병직 교수와 문제의식을 같이 하는 '친일파' 문제와 관련된 글이라는 사실 역시 조선일보의 의식적 '지식인 동원'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지식인들의 '전복적 성찰'의 합리적 핵심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정하게 그들과 견해를 같이 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이처럼 잘못된 역사 속에서 그 곡필과 혹세무민이 한번도 제대로 청산된 적도, 또 스스로 반성한 적도 없이 오로지 탐욕스런 자기 재생산을 위해 우리 사회의 여론구조와 지식문화 지형의 틈새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룡언론의 꼭두각시놀음에 계속 자발적으로 동원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윤리적/정치적 판단능력과 입장을 엄중하게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둔 시기, 신문의 편파·불공정·왜곡보도에 대한 감시운동을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세대인 3,40대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희망네트워크'(www.hopenet.or.kr)의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는 매주 화, 목, 토 격일간격의 모니터링 칼럼을 이어가고 있다. <13인위원회의 신문읽기>에는 김명인씨를 비롯해 김택수 변호사, 이용성 한서대 교수, 김창수 민족회의 정책실장,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권오성 목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 권오성 목사, 소설가 정도상씨,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방인철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 권오성 수도교회 목사, 대학생 오승훈씨,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 등 각계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독자로서 필진에 참여하고자하는 분들은 희망네트워크 홈페이지(www.hopenet.or.kr)「독자참여」란이나 dreamje@freechal.com을 이용.- 편집자주 2002/10/14 오후 4:16 기사제공 기관 : 희망네트워크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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