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싹은 애써 외면하는 <조선> 칼럼

고태진 기자 ktjmms@kornet.net  

거대 신문에서 대문짝만한 칼럼을 통해 한 개인의 인권을 이렇듯 짓밟은 적은 없었다. 한때의 잘못으로 전과를 가진 사람은 최소한의 인권도 없나?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도 이 정도로까지 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

<조선일보> 양상훈 정치부 차장은 9월 25일, '일찍이 이런 대선은 없었다'라는 칼럼에서 "김대업 씨는 말 그대로 파렴치범이다"라고 단정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그의 '파렴치한 범죄'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이 파렴치범이라고 단정할 만한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김대업씨는 예전에 범죄를 저질러 그 대가를 치른 사람일 뿐으로 아무리 양보를 한다 하더라도 '과거에 파렴치범이었던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를 항상 '탈세나 하는 파렴치한 언론'이라고 지칭한다면 부당하다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유력 후보와 진실 게임을 벌이고 있는 당사자란 것이다. 따라서 언론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뒤로 젖혀놓은 채 한 쪽을 '파렴치범'이라고 이름표를 붙이는 행위는 아무리 봐도 다른 한쪽을 편들기 위한 것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와중이 아닌가?

양상훈씨가 설정한 '파렴치범 대 마약사범'이라는 구도는 한나라당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파렴치한 거짓말장이일 수도 있는 이회창 후보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서 순결한 몸으로 딴 세상을 날고 있다.

반면 이정연씨의 불법 병역면제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는 '파렴치범'과 '인간 말종'의 이름표를 달고 땅바닥 진흙탕으로 끌어내려져 한나라당의 정치인과 거대 언론들에게서 짓밟힘을 당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양 차장이 말하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인 것인가?

일찍이 이런 대선은 없었다?

양 차장은 역대 선거 때마다 국가적 이슈가 있었으나, 2002년 대통령 선거에는 아직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아마 한쪽밖에 보지 않는 외눈박이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거창한 국가적 이슈를 내거는 대통령보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보통 국민들과 같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와 책임을 제대로 이행한 사람을 원한다. 그것은 2차례의 국무총리 인준 부결 과정에서 이미 확인한 바와 같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번 대선은 가장 기초적인 정치인의 덕목을 확인하는 선거가 될 것이다. 만약 이회창 후보가 아들을 불법적으로 병역을 면제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하늘까지 팔아가며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며,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불법으로 면제시킨 그야말로 '파렴치범'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수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정연씨, 나아가 수연씨까지 병역에 관계된 의혹은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파렴치범'이나, '인간 말종'이라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이미 국민의 반 이상이 실제로 병역면제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가리고 희석시키고자하는 일부 정치권과 언론의 '진흙탕 칠하기'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이것을 국민을 상대로 한 거대한 사기극으로 봐야 하나?

양 차장은 이번 대선이 "국가적 이슈가 완전히 사라진 대통령 선거 무대 위에 올라선 것은 파렴치범과 마약범, 그리고 축구"이며 따라서 "이번 대통령선거는 사상 최악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두 정당의 후보가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민주적, 상향식으로 선출됨으로써 오히려 가장 정통성 있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선거라는 긍정적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정작 의혹의 당사자는 별 말이 없고 나머지 국회의원들이 똘똘 뭉쳐 자당의 대선 후보를 지키기 위해 국정과 정치판을 온통 음모와 의혹으로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주당은 반대로 국민이 뽑아준 대선 후보를 흔들고 낙마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분권화'된 자중지란의 모습의 보여주고 있음으로써 이번 대선의 긍적적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병역면제와 거짓말,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 그리고 축구

대선의 무대에 올려져 있다는 '파렴치범과 마약사범, 그리고 축구' 중에서 축구는 정몽준 의원이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아니다. 하나는 '병역면제와 거짓말'이고 나머지 하나는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이 불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민이 확신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대선에서의 승패를 떠나서 국민 경선이라는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이 지켜지는 정치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 나라가 뒷걸음질 치지 않고 제대로 된 나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의 국가적 이슈이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한없이 저질로 치닫는 정치판'을 질타하고 있다. 정치판은 아직 그런 수준이라 치자. 최소한 언론만이라도 다소 시야를 올려서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어째서 김대업씨가 전과자였다는 사실만 보이고, 이정연씨의 병역면제와 관련한 수십 가지의 의혹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가? 어째서 진흙탕만 보고, 진흙 사이에 끈질기게 피어나는 진실의 싹에서는 애써 눈길을 돌리려 하는가?




[동서남북] 일찍이 이런 대선(大選)은 없었다

-<조선일보> 9월25일자

파렴치범 대(對) 마약범, 그리고 축구. 2002년 대통령선거를 움직이는 변수들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를 겨냥해 병풍(兵風) 공세를 시작한 김대업(金大業)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파렴치범이다. 그의 전과기록 중엔 자신을 장군이라고 속이고 여성에게 접근한 다음, 그 여성의 어린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사진을 뿌리겠다고 협박한 혐의가 포함돼 있다.

전과자의 말도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한 민주당 의원이 김대업씨를 향해 ‘의인(義人)’이라고 찬사를 보낸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김씨가 민주당에 유리한 말을 해준다고 그가 파렴치한 인생을 청산하고 의인이 된 것은 아니다. 김씨는 병무비리를 뿌리뽑기 위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병적기록표를 검토하는 도중에도 한 여성에게 사기를 친 사람이다.

민주당의 다른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이 더럽지, 김대업이가 뭐가 어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한나라당이 더럽다고 생각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러나 “김대업이가 뭐가 어때?”는 그 의원의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의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한나라당이 김대업씨에게 대항하기 위해 내세운 인물은 마약범이다. 한나라당은 마약판매 혐의로 복역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녹음해, 김대업씨와 현 정권 주요 인사들의 관계를 공격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면서 “김대업의 녹음테이프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 것”이라며 “검찰은 김대업 테이프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 테이프를 다뤄달라”고 말했다.

마약범 출신의 신뢰성보다는 김대업식 방식으로 김대업씨를 역공하는 데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스스로 밝힌 것이다. 김대업씨를 파렴치범이라고 공격하던 한나라당이 스스로 김대업식 수법을 사용하고 마약사범을 끌어들인 것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다.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축구도 대통령 선거의 변수가 되고 있다.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자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부상한 것과 축구와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축구팀이 월드컵에서 성적이 나빴다면 오늘의 정 의원이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요즘 열리는 각급 축구대표팀의 평가전, 친선경기 등은 ‘느닷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치인들 중엔 “대표팀을 위한 경기가 아니라 정 의원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한 경기”, “아시안게임 축구경기에서 한국팀이 지면 정 의원 지지도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축구경기에 대통령 선거판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1971년 박정희 대 김대중, 1987년 노태우 대 김영삼 대 김대중, 1992년 김영삼 대 김대중 대 정주영의 선거는 혼탁했다. 그러나 한 시대의 이슈가 있었다. 1997년 김대중 대 이회창 대 이인제의 선거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라는 뚜렷한 선택의 기준이 있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 선거엔 아무 것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가변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경제적 급부상과 일본의 한반도 본격 개입이라는 중대한 상황에 처해 있다.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 후보들이 “나는 전에 못살았다”, “나도 공부 못한 적 있었다”는 식의 ‘못났다’ 경쟁을 벌이더니, 이제는 정당들 간에 “누가 되면 나는 이민 간다”, “누구는 성상납을 받았다더라”는 등의 저질 소아병적 싸움들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국가적 이슈가 완전히 사라진 대통령 선거 무대 위에 올라선 것은 파렴치범과 마약범, 그리고 축구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사상 최악으로 가고 있다.

(양상훈/정치부 차장 jhyang@chosun.com )






2002/09/25 오전 12:23
ⓒ 2002 OhmyNews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
  내용 입력창 크게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처음 이전 다음       목록 홈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