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사장 귀하/ 손석춘 오랜만입니다. 어느새 4년이 흘렀군요. 진솔한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방 사장은 딱히 농담만은 아닌 농담을 했지요. “기자 출신 임원들이 우리 사장은 너무 순진하다는 말을 자주 해요.” 방 사장이 작은 아버지인 방우영 회장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었습니다만, 방 사장 체제가 들어서면 가 조금은 바뀌겠구나 내심 기대 했습니다. 감옥을 체험한 방 사장이 복귀하면서 비판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겠다고 밝혔을 때도 그랬습니다. 유감입니다만 방 사장에게 건 기대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주필이 바뀌었지만 냉전적이고 친미 사대적인 ‘김대중 칼럼’은 여전히 조선일보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미국조차 ‘평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서해교전 유감 표명을 사과가 아니라고 ‘길길이 날 뛰는’ ― 품격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귀 신문사 주필이 즐겨 쓰고 있기에 돌려드립니다 ­조선일보를 보며 방 사장의 한계를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렇다고 방 사장을 수수꾸려는 의도에서 편지를 띄운 것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사가 ‘조선일보 민간법정’기사를 쓴 두 기자에게 각각 3억과 1억원씩 손해배상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곧장 묻지요. 어쩌자는 겁니까. 부자 신문사 사장으로서 박봉인 한겨레 기자를 돈으로 ‘협박’하자는 겁니까. 신문사에서 보도의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까. 취재기자 두 명만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은 ‘국내 최고 언론사’를 자처하는 신문사 사장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하는 치졸한 일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소송을 내는 모양조차 한나라당과 닮은꼴입니까. 최근 그 당도 한겨레 외부칼럼에 대해 글을 쓴 개인에게 소송을 냈지요. 분명히 증언합니다. 조선일보를 유죄로 심판한 민간법정을 고명섭·안수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하지만 두 기자는 좋은 기사를 쓴 ‘책임’밖에 없습니다. 그 기사를 지면화하는 결정은 담당 부장을 포함한 편집위원회의 몫입니다. 두 기자를 상대로 낸 소송을 즉각 거두기 바랍니다. 당당하게 당시 부장이던 손석춘에게 소송을 거십시오. 민간 법정이 아닌 실제 법정에서 조선일보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친일을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반통일·반민주 보도를 해 왔는지 낱낱이 증언하겠습니다. 조선일보를 친일언론으로 심판한 민간법정 현장을 사실대로 보도한 기사가 ‘악의적 사실 왜곡’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써온 기사·칼럼·언론비평서·소설은 물론이려니와 공개 강연들은 두루 조선일보에 대한 ‘악의적 사실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쓴 마당에 하나 더 고언을 하겠습니다. 나는 홍석현 회장을 ‘계몽군주’ 운운한 사람들을 이미 비판한 바 있습니다. 예서 장담하지요. 시기가 문제일 뿐 대한민국에서 신문사주가 황제처럼 군림하는 세상은 벅벅이 오래갈 수 없습니다. 방 사장도 영국과 일본의 왕실을 눈여겨보기 바랍니다. 그들이 실권을 포기하고 명예를 지킨 것은 바보여서가 아니라 현명해서입니다. 제 잇속 챙기려는 주변의 모리배들만 믿고 실권에 끝까지 연연하다가 자신만 목이 잘려나간 왕들의 비극적 최후를 성찰하기 바랍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상징적으로 말씀드립니다. 방 사장 몸속에 최소한 이 겨레의 핏줄이 흐른다면 미군의 장갑차에 열세 살 두 소녀가 깔려죽은 사건을 다음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임을 부끄러워하시기 바랍니다. 방응모 이래 조선일보가 친일·친군사 독재 신문이었음을 부인하는 짓은 수레바퀴에 맞서려는 사마귀의 가여운 오만일 뿐입니다. 가문의 잘못을 속죄하는 일이야말로 후손이 해야 할 가장 큰 ‘효도’입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입니다. 방 사장의 삶이 역사에 오욕으로 남지 않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반민족·반민주 보도를 일삼아온 조선일보의 자성을 정중히 촉구합니다.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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