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월3일자 오피니언 면의 <조선일보를 읽고>에서 정혜원 학생의 기고문 '日교과서 왜곡 따질 자격있나'를 읽었습니다. 일단 전문을 옮겨봅니다. "최근 보도에서 교과서 편파 기술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보고 현재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의견을 말하고 싶다. 교과서는 전국 수십만명의 학생들의 기본서로 학업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년에 새로 발행될 교과서에 지난 정권을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시기로, 그리고 이번 정권을 발전과 평화의 시기로 기술했다고 한다. 이 교과서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아갈 후배들에게는 교과서를 지은 이들의 편향된 시각만을 주입시킴으로써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뿐 아니라 왜곡된 역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몇 년 전에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들끓던 우리들인데 이젠 우리가 우리의 교과서를 왜곡시키는 것이 진정 올바른 일인지 교과서를 지은 이들에게 묻고 싶다. 교과서를 기술하는 이들이 한 인간이기에 주관적 견해를 기술할 수도 있지만, 그 대상이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후배들이기에 그 형평성에 있어 좀더 신중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옳은 얘기입니다. 교과서에 현 정부의 공과(功過)를 기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산물입니다. 1980년대에 발행된 교과서는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쿠데타로 집권한 후 철권통치를 했던 전두환 정권을 정의사회를 구현한 정부로 묘사하기도 했지요. 이런 관행이 아직까지도 가능한 것은 소위 국정교과서 때문입니다. 정부가 교과서 발행을 주도하는 것이지요. 일제의 잔재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입니다. 한 걸음 진전한 것이지요. 궁극적으로는 교과서 발행을 민간의 자율에 맡기고 선택은 학교와 학부모가 알아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부는 완전히 손을 떼구요. 이번에 검인정 교과서를 맹렬히 비판하는 조선일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이것일까요? 조선일보는 국정교과서체제의 유지, 또는 검인정제도에의 개입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최고의 권력은 청와대도 한나라당도 아닌 조선일보입니다. 청와대는 뇌사상태에 빠진 지 오래고, 한나라당은 조선일보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검정위원 선정에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그저 '의혹'일 뿐이지요. 이 정도만 해놓아도 앞으로 정부는 검정위원을 선정할 때 눈치를 보게 됩니다.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은 1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아예 "근현대사 교과서의 검정교과서화는 시기상조"라고 했습니다. 남경필 대변인은 역사교사모임 등이 만든 대안교과서를 겨냥해 "유물사관이나 민중사관으로 구성된 교과서들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답니다. 죽이 잘 맞지요? 극우집단의 광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과서 발행이 완전 자율화 되어서 역사의 진실이 담긴 교과서가 출현하여 학교에서 자유롭게 채택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 교과서에는 당연히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에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에 충성을 바친 친일행적이 낱낱이 기럭되어 있을 겁니다. 정혜원 학생의 후배들은 비로소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고, 진정한 역사를 배우게 되겠지요. 그리 되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하권 172쪽을 보면 "3·1운동 이후에는 이른바 문화통치에 의해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발행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정간, 폐간, 언론인들이 구속되는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 라는 서술이 있습니다. 보셨나요? 이것은 아주 부분적으로만 사실입니다. 정간, 폐간, 구속 등은 항일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며, 이것을 '박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 신문들은 처음부터 식민통치를 순순히 수용했으며 점점 적극적인 협조로 나아갔습니다. 친일신문인 셈이지요. 민족지라는 표현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조선일보도 교과서 왜곡을 따질 자격이 없는 까닭입니다. 정혜원 학생의 관점은 조선일보의 관점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근현대사 역사교과서의 문제를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된 근거가 조선일보란 얘기지요. 학생은 조선일보 기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만 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다른 신문들과 비교만 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얘기하고 마칠까 합니다. 조선일보는 주한미군의 대변지 역할을 하며 마치 미국신문인 것처럼 처신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저주를 퍼붓습니다. 조선일보식대로 나가면 한반도는 미국이 획책하는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겁니다. 서해교전에 대한 북한의 유감 표명과 주한미군의 오만함에 대해 조선일보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비교해봅시다. "서해사태에 대한 북한의 이른바 '유감표시'는 모든 면에서 대단히 미흡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대화에서 정부는 스스로 밝힌 북한의 명확한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을 북측에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7월31일자 사설, '사과·재발방지·책임자 처벌'을> "미군측이 최종입장을 정하기까지 주어진 최대 42일이라는 기한 동안 한·미 양국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길 기대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종의 '운동확산'의 모양새로 가게 하는 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같은 경향은 피해자 가족들이나 한·미 양국 국민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7월12일자 사설, 韓·美 재판권 다툼 원만하게 풀길> 서해교전 사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감표시'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기어이 사과를 받아내야 하고, 나아가서 책임자 처벌까지 관철시키라는 주문은 대화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 결과는 긴장의 고조와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좋습니다.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미국에 대해서도 똑 같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선이 효순이 생명은 그렇게 하찮은 것일까요?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 어린 학생들 죽음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분노에는 침묵하면서 오로지 이것이 반미운동으로 확산되는 것만을 염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조선일보는 이 엄청난 사건을 전혀 보도도 하지 않다가 사태가 확산되니까 겨우 몇 줄 보도하다가 이렇게 사설에서는 반미감정을 우려한 것이랍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의 명확한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면 나는 북한에 대한 조선일보의 태도를 존중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인식하고 어떤 태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디어를 일컬어 세상을 보는 창(窓)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미디어라는 창은 세상의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보여줄까요? 아닙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도 있고, 그것도 각색하거나 왜곡해서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는 가장 삐뚤어진 창입니다. 조선일보를 오래 보게 되면, 진실은 따로 있는데 조선일보가 그려준 가공의 엉뚱한 환영(幻影)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조선일보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로 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성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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