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은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려는가? 정욱식 기자 civil@peacekorea.org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 핵파문이 터지자, 연일 북한과 김대중 정부를 싸잡아 비난해온 이른바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이 10월 21일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햇볕정책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 언론의 햇볕정책 죽이기 시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번이 갖는 심각성은 자칫 한반도 정세가 통제불능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시기에 북한 핵파문을 또 다시 'DJ 때리기'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사설 "'核공조'냐 '햇볕'이냐 선택해야"라는 사설에서 "대북 핵포기 압박을 높이고 있는 미국 주도의 국제공조와 기왕의 대북사업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대북 핵 국제공조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을 김대중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즉,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고립·압박 외교에 동참하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북한의 비밀 핵프로그램이 공개됨으로써 현정권의 대북정책은 사실상 파산선고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며, '딴전'을 피우지 말고 대북압박 외교에 주도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한미간의 시각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김대중 정부를 질책하고 있다. 이 신문은 21일자 사설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우리 정부는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로 너무도 차분한 모습이다"이라며, "앞에서는 남쪽의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서 뒤에서는 비밀리에 핵개발을 도모해온 북한에 대해 우리 정부가 꾸짖기보다 이해하고 동정하려고 하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김대중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21일자 사설 "북핵과 경협 공존 안된다"에서 장관급 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떠나기에 앞서 "핵문제를 풀면서 화해, 협력은 일정대로 추진한다"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의 말에 대해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핵문제와 경협은 공존할 수 없는 상극관계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즉,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압박하기 위해 경협을 중단하라는 것이 핵심적인 주장인 것이다. 조중동과 이에 보조를 맞춘 한나라당의 구태의연한 접근 방식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현정부의 대북정책과 연계시키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즉, 현정부의 대북지원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면, 이것은 남한의 지원에 대한 배신이라기보다는 미국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우선 제네바 합의에서 명시된 것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가 아니라 '동결'이다. 이는 북한의 핵개발을 궁극적으로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체제안전보장, 정치적, 경제적 관계 정상화, 경수로 사업 등이 상당 부분 완료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 체결 이후 미국은 '기다리면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감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더구나 미국은 '텅빈 동굴'인 금창리를 핵의혹 시설로 단정하고 '폭격' 등을 운운하면서 북한을 궁지에 몰아세우기도 했고, 북한을 상정한 모의 핵공격 훈련을 계속해왔다. 또한 경수로 완공이 목표 시한인 2003년보다 5년 이상 지체될 것도 확실한 상황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는 물론 제네바 합의 파기 가능성을 내비쳐오면서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이러한 설명은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파문을 단순히 '북한의 배신'이라든지 '햇볕정책의 파산'이라는 단선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1994년 한반도 위기의 교훈 인정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북한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사안이다. 그렇다고 남한은 팔짱만 끼고 있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이 당당한 당사자로서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제네바 합의 체결과정에 대한 반성적인 사고부터 필요하다는 것이다. 94년 위기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을 고집해 미국과 북한 둘 모두로부터 외면당한 바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시 언론의 무책임한 편파·왜곡 보도도 있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남한 정부의 미숙함은 협상은 미국이 하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94년 위기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남한 정부와 언론이 미국의 강경파들의 장난에 맞춰 춤을 추다가는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 손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협상을 모색했던 클린턴 행정부에 틈만 나면 딴지를 걸다가, 정작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북폭을 추진한 클린턴 행정부를 말리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가 고조돼 한반도 정세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면 남한 대통령의 반대도 미국의 정책결정에 이렇다할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94년 위기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북한 공격 계획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불과 8년 전의 교훈을 망각하고 '북한 굴복시키기'와 'DJ 죽이기' 차원에서 이번 핵파문을 접근했다가는 94년과 흡사한, 아니 훨씬 심각한 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낭비되는 소중한 힘과 지혜 보수언론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이나 일본보다 남한의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된다. 또한 남한은 총 46억달러에 달하는 경수로 사업비의 70%를 부담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자칫 잘못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고사하고 전쟁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치밀하고도 현명한 해결책이 시급한 것이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외교적으로 고립시켜 압박을 가하면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것이 부시 행정부가 말하는 '평화적 해결'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김대중 정부도 대북 경제협력을 중단하고 대북한 압박외교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경험이 보여주듯 그 '효과'란 북한의 굴복이 아니라 반발이고 위기의 증폭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북한의 참혹한 인도주의적 위기의 심화이고 남한의 정치, 경제적인 불안이며, 심각한 전쟁위기이다. 불만스럽고도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한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검증된' 방법은 대화와 협상이고, 협상 당사자간의 성실한 약속 이행이다.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의 위반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등의 발언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없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개발이 무기제조 단계가 아닌 '연구개발' 단계로 보고 있다. 이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환경이기도 하다. 93-4년 북미간의 핵위기 당시 미국측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국무부 북한담당관의 말은 우리의 현실을 뼈저리게 반성케 한다. 그는 21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의 중대함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이 대미 의존적인 사대주의를 버리고 북한과의 화해를 꾸준히 추진하는 것만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일부 정치권의 무책임한 강경 여론몰이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 안으로부터의 소중한 힘과 지혜를 소진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개발 의혹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대원칙하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적 해결의 힘은 남한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힘과 지혜를 모아도 이 난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편협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달리지 말고, 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언론은 국익과 민족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이다. 모쪼록 여론주도층이라고 하는 언론과 정치권이 또 다시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의 최후의 수단은 전쟁이지만, 우리에게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지 않겠는가? 2002/10/21 오전 11:17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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