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기자 konews@hanmail.net  

우리의 일부 언론은 최근 대서특필한 일련의 보도에서 사실관계의 확인과 진실규명을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참담한 자해행위다. 이 같은 사례는 언론이 언론이기를 스스로 부정하는 자기 파괴행위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DJ노벨 평화상의 로비설 보도는 5679 정보부대장 폭로, 대북 비밀 지원설에 이어 터져나온 것으로 특히 눈길을 끈다. 로비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 이 기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노벨상 심사위원회 등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주체들에 대한 확인보도가 곁들여져야 한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로비 계획만 나와 있다. 이 기사는 DJ가 엉터리로 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부정적 인상을 물씬 풍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로비대상이었다는 노벨 위원회 등도 의혹의 대상 쪽으로 교통정리 되어있다. 동서양이 좁혀지는 지구촌 시대에 이런 식의 보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상상키 어렵다.

만약 노벨 위원회 등이 결백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기사는 로비하려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세운 계획을 보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노벨 위원회 등은 입 닥쳐라 할 수 있을까? 지구촌이 주시하는 상황에서 DJ가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라면 최 아무개라는 적절치 못한 폭로자의 주장과 그 진실성이 심각한 검증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공교롭게도 이 보도가 여러 조간신문의 지면을 차지한 날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열도는 환호성"이라는 기사도 실렸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을 통해 우리나라는 왜 과학 노벨상을 못 받느냐고 자탄했다. 이 신문의 자매지인 뉴스위크가 DJ노벨상 로비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조선, 동아일보 등이 이를 1면 등에 큼지막하게 실었지만 정작 중앙일보는 3면에만 관련 기사를 상대적으로 간략히 처리했다.

이 또한 해괴한 일이다. 주간지에서는 그토록 대대적으로 취급하면서도 일간지에서는 짐짓 간단히 처리한다? 더욱이 우리가 왜 다른 부문의 노벨상은 못 받느냐는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혼란스런 보도 양태가 어떻게 한 언론그룹에서 가능할까 이해하기 어렵다.

올해 부문별 노벨상수상자들이 발표되는 시점에 맞춰진 이 기사가 가져올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듯하다.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노벨상 수상 위원회 등에 의혹의 시선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 위윈회 관계자들은 한국 내에서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는 노벨상 의혹제기 현상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이다.

물론 무시하는 것도 반응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언론의 기본 요건마저 팽개치면서 제 나라 수상자는 물론 노벨 위원회 등도 도매금으로 짓뭉개는 나라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앞으로 한국 출신 후보들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할 용기와 의욕을 유지할 수 있을까?

5679 정보부대장 폭로, 대북비밀 지원설 등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시안 게임이 부산에서 열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대거 참여해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들 폭로성 주장과 그 보도태도는 남북간 화해를 뒷걸음질치게 만들만한 파괴적 요인들을 지니고 있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뚫리면서 살벌한 휴전선의 한 귀퉁이가 무너져내리고 아시안 게임에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가능성이 점쳐지던 시점에서 확실한 근거도 없이 제기되고 언론에 대서특필된 이들 폭로들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모를 사람은 없다.

특히 나라 안팎에 충격을 주는 이런 일들이 언론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일부 언론은 자중해야 한다. 오늘의 언론 자유가 가능했던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별로 기여한 일이 없었던 이들 언론이 스스로를 자해하면서 언론의 고유 영역을 파괴하는 결과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끝으로 거듭 밝히거니와,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 가하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그 막중한 역할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절대 생략해서는 안될 필수사항이 있다. 그것은 언론이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제시하고 진실 규명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율적 검증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이 하나의 완결된 사회조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보도라고 하는 고유한 영역에 대한 진지함과 최선을 다한다는 자율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2002/10/10 오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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