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바람님이 관악노사모 게시판에 쓰신 글을 퍼왔습니다. -------------------------------------------------------------------------------- 토요일… 눈 떠 보니 2시다…입에서 욕이 튄다…이런 제길. 오늘 향린교회에서 “정연주 한겨레 논설위원 강연회”를 들으러 갈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토요일이라고 또 퍼져 잤다. (이건 울 아빠의 표현이다..절대로 “잔다”가 아니라 “퍼져 잔다”이다.) 서둘러 준비하고, 그 때부터 뛴다. 지하철 역까지, 4호선 갈아타는 곳에서, 명동 역 내려서 향린 교회까지… 다행이다. 아직 강연은 시작하지 않았다. 늦게 온 탓에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강연을 들었다. 저기 저기서…간혹 조는 수철…님이 보인다. 정 연주 선생님의 강연에서 귀를 뗄 수가 없었다. 유신시절 암흑 같았던 언론의 모습들. 말로만 들었던 70년대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건에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생생한 경험담. 그리고 감옥에서 맞이했던 10.26,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 또 현재 조.중.동이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서 벌이는 무자비한 경품경쟁과 그로 인해 다른 자본력이 약한 신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 조중동이 어떻게 자기들의 거대한 몸집을 통해서 언론을 악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 차근차근 결코 강하거나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도, 내 맘에는 강하게 박히는 그런 강연이었다. 근데, 난 그 강연의 내용도 물론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강연하시는 그 분. 정연주 선생님이 참 좋았다. 차근차근한 어조로 말하면서 가끔은 샛길로 빠질 듯 위태로운 때도 있었지만, 곧 제 자리로 돌아와 정확하게 끝을 맺는 그 차분함도 좋았고, 참 험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감옥에도 갔다 오셨는데도, 너무 예쁜 웃음을 보여서 좋았다. 예쁜 웃음이라고 하면 이상할까. 난 진짜 그런 부드럽고 낙천적으로 보이는 웃음이 제일 좋았다. 그 부드러움 속에 녹아 있는 녹녹치 않은 열정과 쭉 한길을 똑바로 걸어온 사람만의 자기긍정이 느껴진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런 멋진 웃음을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야 하는데… 강연은 그렇게 뜨거운 동의 속에서 끝났다.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그리고 저 앞쪽에서 사진을 찍고 계시던 무위님도 보았고, 뒤늦게 오신 이젠씨님과 아파치님도 보았다. 관악에서 이제 5명. 뒤풀이를 “명동회관”에서 했다. 인사모 사람들과 조아세 그리고 물총 사람들 정연주 논설위원까지 다 같이 함께 밥을 먹었다. 거기서 대전에서 올라오셨다는 노사모(이름을 기억못해 정말 죄송…) 분을 만났는데 참 유쾌하신 분이다. 왠지 피터팬 같은 느낌…그렇게 말 빠르게 하는 충청도 분을 처음 만났다. 그 분 말씀에 4남매인데 다들 말하는 걸 좋아해서 서로 자기가 얘기할려구 싸울까봐 한 번에 한명씩 1분씩 시간을 정해서 얘기하다 보니 그렇게 말이 빨라졌다나…참 재밌는 가족 같다. 거기서 끝났을까? 아니다. 당연히. 포청청님이 앞장서서 2차를 갔고, 거기서 난 맘 졸이며 자리를 정연주 선생님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역시 내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좋았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낙천적으로 살아갈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3차는 조아세분들과 노래방에 갔다. 4차를 가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명동 어느 구석 어느 건물의 옆에서 “반민특위기념비”를 보았다. 스쳐 지나가면 찾을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오마이뉴스 편집국장님의 설명까지 곁들이며 한참 어둑해져 인적이 드물어진 밤거리에 10명 정도의 사람이 뺑 둘러써서 있자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뭐랄까…누군가 들키지 않게 감춰 놓은 역사를 몰래 와서 찾아내는 게릴라 같다고 나 할까. (내가 요즘 “체게바라”를 읽고 있어서 “게릴라”란 말이 떠올렸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한밤의 명동 역사 기행”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4차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마시고 헤어져 집에 왔다. 잠이 오지 않는다. 너무 기분이 좋아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걸 정말 오랜만에 느낀다. 오늘 하루. 너무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렇다. 10년 넘게 언론개혁 운동을 하신다는 서울물총의 두 여자분. 나서지 않으면서 뒤에서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켰을 그 분들에게서도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지만 열심히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하시는 이젠씨님과 아파치님…그분들이 항상 주는 감동도 함께. 포청청님과 독립군님..그리고 내 짧은 기억력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분들. 왠지 지금의 내 자리가 그 분들의 젊음의 한 부분으로 세워진 듯해서 황송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그 분들을 지치지 않게 한 힘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역할을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일에서도 여기 노사모 활동에서도 어느 것 하나 열심히 하는 게 없어서 답답하다. 관악 일일 주점도 얼마 남지 않았고, 대선도 정말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하는데. 회사에선 새로운 일들과 새로운 프로젝트와 새로운 책임이 계속 불어나는데. 침대에 누웠다. 빨리 자야한다. 일요일 일찍 일어나서 벌써 두 달 넘게 미뤄두었던 카메라 가방도 사야 하고, 지저분한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그리고 선대위 출범전야제도 가야하고 외갓댁에 인사도 드리러 가야하고. 그런데… 빨리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가슴 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자꾸 꿈틀대는 게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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