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자 사설 'DJ와 다른 고이즈미 협상법'의 문제 임명현 기자 epismelo@freechal.com "주장을 담은 글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논설문 쓰기의 기본적 조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기본적 조건마저 무시되고 있는 글을 볼 때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무슨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아니고, "대한민국 1등신문"이라고 자부하는 신문사의 사설이 그러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어제(18일) 사설 중 하나였던 'DJ와 다른 고이즈미 협상법'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사설은 김정일을 만난 고이즈미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웃음이나 포옹 등 과감한 외교적 제스처를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해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평양행을 일·북간 중요 현안에 대한 정상 간 담판의 기회로 삼을 뿐, 불필요한 정치행사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라며 추켜올린다. 관련기사 만평과 사설이 뒤바뀐 조선일보 여기까지는 해석의 자유로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측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고이즈미의 협상전략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행적을 검토한 결과, 북측이 미리 마련해둔 화려한 의전 및 깜짝 행사에 흥분할 경우 북한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고, 또 배석자 없는 정상 간 단독행사는 정치적 위험이 큰 만큼 이를 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라고 논의를 확대하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부분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일본의 어떠한 언론사에서 그러한 보도를 내놓았는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사설 내용만 보자면 그 의견이 조선일보의 것이라기보다는 그 일본측 보도를 "인용"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렇다면 그 인용의 신빙성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인용의 출처를 밝혀야 하지 않을까? 출처도 불분명한 "일본측의 보도"를 놓고 사설은 더 거들기 시작한다. "김정일 외교의 전매특허처럼 굳어진 '깜짝쇼'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김정일처럼 외교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인물과 회담을 하게 될 경우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방법이 안전하고 또 효과적인 길이다"느니 하며 말이다. 그러나 자세히 되짚어보자.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보여준 "깜짝쇼"는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55년만에 분단된 남북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출발하기 이전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섣부른 협상 결과를 기대하기 보다 남북 정상이 최초로 만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라고 분석했고 언론의 보도 방향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말대로라면, 55년만에 만난 남북의 정상이 서로 웃지도 않고 시종일관 딱딱하게 현안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헤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야만 협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당시 남북한 정상간의 만남에는 이번 북-일 회담의 경우처럼 뚜렷한 협상의 의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첫 번째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었고, 그 만남의 감격을 두 정상들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 이외에도 김정일이 언제 "깜짝쇼"를 했는가. 푸틴이나 장쩌민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이 공항에 나가서 직접 영접을 한 것은 그들이 북한의 오랜 동맹국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수상이 남한을 방문했을 때 우리의 국가수반이 나가서 영접하고 그들과 포옹하고 하면 조선일보의 시선에는 이러한 것도 "깜짝쇼"로 보이겠다. 게다가, 무슨 근거로 김정일을 "외교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인물"이라고 규정하는지 모르겠다. 서두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주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했으면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인데, 어디에 근거가 있는가? 근거가 없는 주장은 더 이상 주장이 아닌, 일방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사설의 끝부분은 더 가관이다. "북한 다루기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부하는 김 대통령이 거꾸로 '해서는 안될'교훈의 참고 사례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야말 'DJ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여실히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란다. 다시 한 번 묻자. 누가 DJ를 반면교사로 활용했는가? 보도의 출처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DJ가 활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막힘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 사설에서의 비교 대상은 어디까지나 <김정일과의 회담 태도를 기준으로 한 DJ와 고이즈미의 차이점>임에도 이것을 "DJ 대북정책"의 영역까지 확대시킨 것에는 정말 조소를 금할 수가 없다. 백 번 양보해서 "DJ의 대 김정일 자세"의 문제점을 "DJ 대북정책"으로 잘못 본 게 아닐까 하고 접근해도 도대체 고이즈미와 달랐던 김대중 대통령의 대 김정일 자세가 상대적으로 어떠한 손해를 유발한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다. 무슨 첨삭지도도 아니고 더 이상의 논리적인 지적은 이제 지친다. 그리고 그 정도의 "논리" 능력도 없어서 조선일보가 치사하게 이런 식의 반칙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은 이렇게 왜곡하고 싶은 것이다라는 걸 지적하고 싶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늘 정작 자신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이 분명히 있음에도, 그 주장에 대한 논거가 불충분하며 동시에 억지스럽다 보니 이 주장의 주체를 자신들이 아닌 불특정 다수로 상정하고 글을 전개함으로써 교묘히 "일리"를 확보하며 동시에 비판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법을 취해 왔다. 이제 그러한 반칙은 그만두라.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명확한 근거와 함께 분명히 주장하라.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근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비겁하게 불특정 다수를 내세우고 뒤에 숨어서 저지르는 이러한 반칙은 이제 그만두라. 이제 소스 떨어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사설 원문 : DJ와 다른 고이즈미 협상법> 17일 평양에 도착한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철저하게 계산된 실무적이고 냉정한 태도다. 그의 말과 몸짓은 절제돼 있었고, 표정에서는 감정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처음 대면했을 때 한손으로 가벼운 악수만 건넸을 뿐이었고, 점심식사도 따로 했을 정도다. 이같은 태도는 이번 평양행을 일·북 간 중요 현안에 대한 정상 간 담판의 기회로 삼을 뿐, 불필요한 정치행사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일본측 보도에 따르면, 이런 ‘냉정한 협상’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서 반면교사로 삼은 것이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행적을 검토한 결과, 북측이 미리 마련해둔 화려한 의전 및 깜짝행사에 흥분할 경우 북한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고, 또 배석자 없는 정상 간 단독행사는 정치적 위험이 큰 만큼 이를 피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측이 정상들만 있는 상황을 없애버린 덕분에 김정일 외교의 전매특허처럼 굳어진 ‘깜짝쇼’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실 김정일처럼 외교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는 인물과 회담을 하게 될 경우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방법이 안전하고 또 효과적인 길이다. 이는 과거 동·서독 회담을 비롯, 세계의 다른 사례에서도 확인된 일이다. 북한 다루기에 관한 한 최고임을 자부하는 김 대통령이 거꾸로 ‘해서는 안 될’ 교훈의 참고사례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야말로 ‘DJ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여실히 방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02/09/19 오전 00:57 ⓒ 200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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