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정부가 부활한 신문고시가 휴지 꼴이나 다름없다. 실종된 집행 의지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던 판매 싸움을 재연시켰다. 부수 경쟁이 더욱 격렬해져 무가지 살포기간이 더 장기화하고 경품도 고급화하고 있다. 이 판에 조선·중앙일보가 경제섹션을 강화한다며 증면 싸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신문시장이 생사를 판가름하는 무한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1987년 신문발행 등록 자율화는 신문시장에 격변을 몰고 왔다. 신참 진입이 허용되자 카르텔에 의해 묶였던 발행면수 제한이 깨졌다. 시장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증면 경쟁이 제동장치를 잃고 질주한다. 12면에서 출발한 싸움이 60~70면까지 확대됐다.


고속 윤전기를 경쟁적으로 도입하면서 자본열위의 신문사들은 금융부채에 눌려 숨쉬기조차 벅차다.




신문판매 싸움은 증면 경쟁과 부수 경쟁을 함께 벌이는 양면전이다. 자본우위의 신문사들은 지방 곳곳에 분공장을 짓고 전국에 무가지를 융단폭격하듯이 퍼붓는다. 판매사원끼리 빈발하던 폭력행위가 급기야 살인사건을 낳기도 했다. 시장질서가 극도로 문란해졌는데 1998년 12월 규제개혁위원회가 공정거래를 위한 신문고시를 폐지해 버렸다. 시장질서를 붕괴시키는 결정타였다. 그 결과 조·중·동이라는 독과점 체제가 구축되어 시장의 75%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신문이 품질 경쟁이 아닌 물량 경쟁에 치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문사는 광고 수입이 전체 매출에서 80% 가량을 차지한다. 광고만 많다면 신문은 공짜로 뿌려도 수지가 맞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 까닭에 독자가 읽지도 않는 지면을 늘리고 배달되지도 않는 신문을 많이 찍어 폐지처럼 버린다. 발행부수를 부풀려 광고 수주를 늘리기 위한 판매전략이다.


지면이 늘어날수록 광고의 열독률은 떨어진다. 광고 효과가 줄어드니 독자의 눈을 끌려면 광고의 크기를 키우고 더 자주 게재한다. 그러니 광고 수주를 위한 증면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과점신문은 광고 게재율이 50~60%로 기사 게재율보다 오히려 높다. 과점신문은 전면광고를 두어 번 넘겨야 기사가 나오니 광고지인지 신문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증면 싸움에만 몰두하지 인력 보강은 나 몰라라 한다. 12면 시절 150명선이었던 편집국 인원이 고작 250~40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과 일본의 유력지 편집국 인원은 1,000~1,200명선이다. 취재활동은커녕 기사 작성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니 시사성·시의성이 없고 소비 유발적인 오락성·잡지성 기사가 넘쳐난다. 경제섹션을 증면한다지만 기업의 홍보성 기사가 수두룩하다.


신문시장은 포화상태라 신규 수요나 대체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판매전략이란 자금 살포를 통해 타사의 독자를 약탈하는 것이 전부이다. 과점신문의 횡포로 지방신문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도산 위기에 처했다. 중앙지라고 형편이 나을 게 없다. 과점신문의 자금력·조직력이 여론시장을 질식시키는 형국이다.


신문시장의 독과점은 여론시장의 독과점을 의미한다. 사회구조가 다원화·다기화하면서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소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과점신문의 편향적 보도가 다양한 여론 형성을 차단하고 성숙한 민주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된 판매전쟁이 ‘더 두꺼운 신문이 더 좋다’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신문의 선택은 누가 ‘공정’을 아끼고 누가 ‘진실’을 쫓느냐에 따라야 한다.


〈김영호/시사평론가〉



최종 편집: 2002년 09월 02일 18: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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