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이 민족지, 인촌은 애국지사?
<야인시대> 작가 이환경 선생님께 드리는 글

문성 기자 aemet@hanmail.net  

시대적으로 1000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제국의 아침>(KBS)과 <야인시대>(SBS)를 바삐 오가시느라 정신이 없으실 작가 이환경 선생님께 무명의 시청자가 거두절미하옵고 감히 한 말씀 여쭈옵니다.

요즘 <야인시대> 때문에 말이 많은 것을 혹 알고 계시는지요? 스크린을 통해 여러 차례 상영됐던 '야인' 김두한을 TV 브라운관을 통해 다시 재조명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당시 시대상황과 관련하여 일부 사실과 다른 대목들이 너무 눈에 거슬린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게시판에 실린 시청자들의 항변을 잠깐 들어보시겠습니까?

"작가님!!! 왜 조선/동아와 같은 당시대의 친일파를 의도적으로 미화하십니까? 이건 역사에 대한 반역입니다. 조선일보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는 대표적인 친일파라는 사실은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하신 분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역사극을 주로 쓰시는 작가님이 이를 모르실 리 없고 왜 그러시는 겁니까? 동아.조선한테 잘 보일 일 있습니까? 이렇게 역사를 왜곡해도 되는 겁니까? 엄중 항의합니다..."(ID umseong)

"야인시대는 친일파들을 합리화하려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친일언론에 대해서는 오버하면서까지 그들을 합리화하고 오히려 그들을 민족의 지도자인냥 미화하고 있다. 정말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화가 난다. 작가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PD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ID ksk4921)

"드라마 왜곡이 심하군요. 인촌 김성수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다 아는데, 거참... 일본놈들한테 아부해서 돈 많이 벌다, 해방되어서 그 돈으로 한민당 세워서 국회의원되고... 그런데 애국지사라니...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했다고 해서 그 이후에야 좀 쳐준다고 해도 일제시대엔 분명 친일파였죠... 뭐 좀 좋게 평가해봤자 기회주의자 아니었나요? 온 가족이 보는 드라마입니다. 아무리 드라마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에 관해서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요?..."(ID holyladen)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검색했더니 엄청 많네요. 그런데 마치 민족신문인 양 극찬하니 같은 언론사라고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야인시대 재밌게 보다가 열불 나서 퍼왔습니다. 자중하세요 작가님..."(ID emexcargo)

"야인시대는 정말 전형적인 역사왜곡 저질 드라마입니다. 언론계의 '친일파' 김성수와 '친일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민족주의자, 민족신문으로 묘사하는 건 한 개인이 아니고 방송이기 때문에 또 한참 자라는 청소년들이 보는 프로이기 때문에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니 어떻게 김좌진 장군과 김성수를 묶어서 청소년의 정신을 흐리게 합니까?..."(ID mayan2023)

이들이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는 <조선> <동아>와 김성수의 친일행각은 지난 3월 1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발표문이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집에 상세히 기재되어 있으니 더 이상 부연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에 두루 해박하신 '사극의 최고봉'이신 만큼 설마 이에 대해 모르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래서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만, 선생님께서 <조선> <동아>를 '민족지'로 내레이션 처리하고, 인촌을 애국지사인 양 둔갑시키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픽션을 본령으로 하는 드라마의 속성상, 흥미를 더하고 내적 필연성을 가미시키기 위해서 '부득이' 그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고충이 있어서 그리하신 것입니까?

만약 전자 때문이라면, 아무리 드라마가 픽션을 기본으로 하고 또 역사드라마가 5%의 사실과 95%의 허구로 짜집기돼 있다 하더라도,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마저 거짓으로 만드는 것은 '역사에 기초한 드라마'가 아니라 '역사를 강간하는 드라마'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주간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사극의 역사왜곡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 정확히 그리면 되지만 이건 드라마잖아요.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픽션이에요. 사극은 일어난 사실에 픽션을 입히는 것이므로 픽션 부분이 진실과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만약 어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게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 설령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이라도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제국의 아침' 집필 작가 이환경씨, 뉴스메이커 465호

"만약 어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게 나와 있는 내용이라면, 설령 드라마가 한창 진행중이라도 내용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이제 와서 달라지신 것은 아니겠지요? <조선> <동아>와 인촌의 친일행각, 바로 그것은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분명하게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진실입니다. 그럴진대 마땅히 "드라마가 한창 진행 중이라도 '내용'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진정 '역사드라마'라는 이름에 값하는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이환경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상기한 인터뷰에서 '사극의 묘미'에 대해 이르시기를, "지난날을 통해 오늘의 거울로 삼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극을 많이 하다보니까, 역사는 정확히 되풀이되더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지난날의 허물을 반추하여 오늘의 길라잡이로 삼기 위해서라도, 김성수를 비롯한 친일군상들의 부끄러운 행각은 사실 그대로 알려져야 합니다.

"프랑스·독일·중국·북한도 전쟁 종식 후 매국노들을 단죄했는데, 우리 남한만 거꾸로" 되고, 그리하여 "독립지사 아들들은 다 저 봉천동 판잣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고 있고, 친일파 자손들은 전부 호의호식하며 잘 사는"(ibid) 참담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조선> <동아> 등 친일매국 신문들의 반민족적 죄악상은 진실 그대로 알려져야만 합니다.

"'인간 김두한'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진실을 또 다른 각도에서 드러낸다"는 것이 드라마 '야인시대'의 기획의도일진대, 또한 "지식인들의 변절 등 아픈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과거를 솔직하게 그려내 시대극의 묘미를 살린다"는 것이 드라마 '야인시대'의 제작방향 가운데 하나일진대, 나아가 "김두한을 한 축으로 놓고 다른 한 축엔 근대사의 진실을 보여 주겠다"(ibid)는 것이 선생님께서 밝히신 드라마 '야인시대'의 집필의도일진대, 인촌과 <조선> <동아> 등에 대한 잘못된 기술을 바로 잡는 일을 미루거나 주저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환경 선생님.

글 말미에 조심스레 덧붙이는 말씀입니다만, 선생님께서 친일파 문제를 다루려다가 그 때문에 "SBS가 발칵 뒤집어지기도"(ibid) 했다지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정 부분 표현 수위를 조절"(ibid)할 수밖에 없었고요. 그를 보고서 저 나름대로 '야인시대'가 <조선> <동아>와 인촌에 왜 너그러울 수밖에 없었던가를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그건 결단코 안됩니다.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진실에는 '정·오'만 이 존재할 뿐, 수위조절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타협해서 얻어낸 기형적, 배반적인 성취에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광복 50년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났건만, 이 땅에서는 아직도 친일파가 보란 듯이 활개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친일신문지 <조선>과 <동아>는 '민족지'를 참칭하고서 무소불위한 권능을 휘두르며 진실을 억누르고 있습니다.

친일청산이 전무한 한반도 남쪽의 비루한 모습이 이러합니다. 이러한 때에 '인간 김두한'을 통해서 그가 살다간 근대사의 진실을 조망하려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의의는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야인시대'에 쏟아진 시청자들의 질타와 항변이 바로 애정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여 선생님께 거듭 간곡히 부탁드리거니와, 이제라도 친일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로잡아주시어 진실을 소망하는 모든 이들이 안심하고 기쁨으로 볼 수 있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내부에서부터 친일을 척결하여 진정한 광복을 달성코자 하는 저희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십시오. 선생님의 싸움에 저희들도 함께 하겠습니다. 끝으로 선생님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빌며 이 글을 마칩니다.


  이름   메일 (관리자권한)
  내용 입력창 크게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