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발탁’이다. 서울 강남·성북·영등포에 빌딩이 있다. 압구정동엔 아파트 3채, 도봉동엔 임야다. 뿐 만인가. 경기·충청·전라·제주도에 땅이 있다. 가히 전국적 인물이다. 단연 총리감이다. <매일경제> 사장에서 총리서리로 ‘임명’된 장대환씨다.

청와대 박지원 비서실장은 침이 마른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참신하고 비전을 가진 최고경영인이자 탁월한 국제감각과 역동적 리더십을 가진 분으로서 경영능력·개혁성·추진력을 겸비”했단다. 김대중 대통령도 거든다. 국무회의 자리에서 극찬했다. “언론사 경영에서도 공정하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언론인으로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과연 그러한가. 딴은 김 정권이 아직 개혁정권을 자임한다면 장씨도 ‘개혁’적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 적어도 그가 ‘언론사 경영에 공정’하거나 ‘국민의 존경을 받는 언론인’이란 대통령의 말은 의도했든 아니든 거짓말이다. 언론사장, 그것도 경제지 사장으로서 주식을 대량으로 지니고, 취재기자들에게 ‘회사 수익’을 강조한 인물이 언론사 경영에 ‘공정’했다면 언론인에 대한 모독이다. 장씨는 적잖은 언론인들로부터 “기자들을 동원해 광고나 사업을 유치해 수익을 올리는 방법으로 경영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 장씨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언론인이라면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박 실장은 ‘일찍이 30대에 언론사 사장’을 했다고 장씨를 높였지만 그 까닭은 언론인으로 ‘탁월’하거나 ‘참신’해서가 전혀 아니다. 단순하다. 사주의 외동딸과 결혼해서일 뿐이다. 박 실장은 “여러 기관에서 검증해 모든 문제에서 하자가 없다”고 장담했다. 재산을 검증했느냐는 질문에도 당당했다.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검증을 완료했다.”

그러나 장씨의 재산은 스스로 신고한 액수가 57억원이다. 실제 재산은 더 많다.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꾼 의혹이 짙다. 골프장회원권도 5개다. 10대 자녀의 예금통장엔 8천만원이 들어있다. ‘우리 정부의 검증’에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부를 내세운 김 정권의 정체를 폭로해준다. 애면글면 시민사회단체의 요구로 국세청이 벌인 언론사 세무조사에서도 매일경제는 거액의 탈세가 드러났다. 그럼에도 장씨가 언론사를 ‘공정’하게 경영했다고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버젓이 말하는 풍경은 소가 웃을 일이다. 세무조사에 나선 김 정권의 눈이 얼마나 천박했고 자기배반적인지도 거듭 확인됐다.

더구나 장씨는 재벌2세 모임의 초대회장을 지냈다. 대표적 신문사주인 방상훈·홍석현씨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엔 장상 지명 때처럼 따따부타 검증하는 보도가 없다. 문제는 장씨의 아파트·임야·밭·주식·예금 등 ‘전천후 재산’이 ‘부자신문’ 사주들의 재산에 비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에 있다. 바로 그 사주가 편집권을 장악할 때 취재와 보도의 방향이 어떨지 예측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대다수 신문이 노동자에 적대적인 보도를 일삼고 진보정당을 외면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수구적이고 냉전적인 정권을 다시 세우려고 노골적 편파보도를 일삼는 까닭도 기실 여기에 있다.

문제는 김대중 정권이다. 언론사주와 재벌에 ‘추파’를 던지면서 임기를 마칠 속셈이 분명해졌다. 실제로 김 정권은 부자신문과 더불어 ‘노무현 바람’을 잠재우고 있는 ‘1등 공신’이다. 속죄의 심정으로 구속노동자들을 석방하라는 여론을 8·15사면에서 살천스레 묵살했다.

하여 오늘 김대중 정권에 차라리 고마움을 전한다. 두 장씨의 총리지명으로 그 자신은 물론, 대학과 언론의 상층부가 얼마나 썩었는지 진실을 증언해주었다. 대한민국이 절망스럽다는 여론이 퍼져 가는 이유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정당·대학·언론을 틀어쥔 대한민국 기득권세력의 ‘무기’이다.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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