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흔드는 것도 상호주의? <신문 뒤집어 읽기> 그들은 어쩜 그리도 똑 같을까? (2편) 고태진 기자 ktjmms@kornet.net   이번엔 중앙일보가 앞장섰다. 중앙일보는 8월 10일자 사설 '아시안 게임때 인공기 어떡하나'에서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여키로 함에 따라 경기장에서의 인공기 게양과 북한 국가 연주, 나아가 응원단의 인공기 사용에 따른 남남 갈등과 국가보안법상의 범법 행위에 대하여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중앙에 뒤질세라 8월 12일자 사설에서 아시안게임에서의 인공기 사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인공기와 북한국가 (조선일보) '인공기 딜레마' 신중하게 풀어야 (동아일보) '인공기 문제'에 대한 그들 세 신문의 해법은 대동소이하다. 국기나 국가에 대해서도 상호주의를 강조하면서 "차제에 남북이 국가상징물 사용에 관한 상호주의 원칙도 확립해야 할 것"(조선)이며, "남북한 간에도 국기·국가 문제에 대한 상호주의 원칙을 세워 진일보한 대화와 교류를 이룩하는 계기"(중앙)가 되어야 하며, "입장식과 응원의 경우 남북한 모두 한반도기를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해결방법"(동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선 인공기와 관련하여 과거의 2가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00년 7월 19일 대구시의 한 나이트클럽의 웨이터가 자신의 승용차에 인공기 등을 걸어놓고 '3번 웨이터 김정일'이라고 새긴 명함을 돌리다 경찰에 붙잡혔다. 대구 중부경찰서는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적용을 검토했으나 김씨의 행동이 북한 찬양목적이 아닌, 생계를 위한 단순호객 행위에 불과해 처벌하기 힘들다고 결론 내리고 무죄방면하였다. 2000년 6월 15일 김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를 경축하기 위해 전국의 18개 대학에 태극기와 함께 인공기가 내걸려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검찰은 "인공기를 태극기, 한반도기와 나란히 건 것을 두고 북한을 찬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북정상간 공동선언 채택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급변한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적용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처벌하지 않았다. 사실 그 동안 개폐의 논란이 되어온 국가보안법(특히 7조 고무, 찬양 관련)을 유지해야 된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예컨대 이 조항이 없으면 서울역 광장에서 인공기를 걸어놓고 서명운동을 벌여도 처벌할 수 없으며, 허위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말하면서 북한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행위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광화문 한복판에 인공기를 걸어놓아도 무방하다 할 수는 없다."(조선일보 1999년 7월10일 사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과연 북한을 고무, 찬양한다는 개념에 대해서다. 괜히 애매한 한총련 학생들만 문구 일부를 문제삼아 수배자로 만들고 있을 뿐 실질적인 의미에서는 이미 앞의 두 사례에서 보았듯이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보수신문들은 북한의 식량위기 이후 날이면 날마다 북한을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묘사해 왔으면서도 북한을 고무, 찬양할 우리 국민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더구나 스포츠의 장에 있어서 동포애를 갖고 인공기를 흔들며 북한팀을 응원하는 것을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것과 연결시키려는 것은 억지나 다름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정작 이 시점에서 우리가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은 정권에 의해 악용되어 오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해온 국가 보안법의 폐지인 것이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 얼싸안고 서로를 고무하며, 남쪽의 관광객이 북의 땅을 관광하고, 북한의 현지 공장에서 남한의 물건이 생산되고, 북한의 거리 모습이나 생활상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오늘날이다. 과거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 식의 냉전 시대에 존재했던 악법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김대중 대통령부터 처벌을 받아야 하며, 김정일은 답방 즉시 체포되어야 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진전은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우리 신문을 독과점으로 지배하고 있는 조중동 세 신문은 아직도 정작 예전에 되풀이해온 구태의연한 소리만 되뇌이고 있다. 우리가 아시안 게임에서 인공기를 걸어주고 흔들어주는 만큼 우리 태극기도 북한에서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자는 소아적 발상을 상호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장하고 있다. 인공기를 흔든다고 북한을 고무, 찬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는 태도이다. 물론 인공기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국민 또한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모든 나라들이 모인 스포츠 행사의 자리에서 같은 동포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인공기를 기꺼이 흔들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 민족의 자연스런 동포애이고, 우리 국민들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아시안 게임에서의 인공기는 정치적 의미가 없는 스포츠 행사에서의 단순한 국가의 표기일 뿐이다. 북한이 체제 누수의 불안을 무릅쓰고 부산에서 있을 아시안 게임에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기로 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북한 나름의 여러 계산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치성을 배제한 스포츠 행사 자체로서 북한의 선수와 응원단을 동포애로 따뜻이 맞아주는 것이 남과북의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자세이며, 스포츠 정신에도 부합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국기 사용을 가지고 딴지를 걸고 나오는 주류 언론들의 태도는 북한의 아시안 게임 참가가 쉬운 행로가 되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우습지 않은가?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도 아닌 우리가 북한의 국기는 어느 특정 범위에서, 또 몇 장만 한정해서 사용이 가능하며, 나중에 우리가 북한에서 행사가 있을 때 그만큼 사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유치한 상호주의 따위를 내건다는 자체가 말이다. 오히려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보는 아시안 게임 경기장에서 북한의 인공기를 내걸어야 할 상황이 도래함으로써 국가보안법 옹호론자들의 논리도 수명을 다한 만큼, 이를 계기로 이제는 애매한 사람들 전과자나 수배자 만드는 데 앞장선 국가보안법 폐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 사회의 거대 독과점 신문들은 국기 흔드는 데에도 엄숙한 상호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오늘도 판박이 사설을 동원하여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큰 물 흘러가는 강은 못보고 도랑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2002/08/12 오전 12:16 ⓒ 2002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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